행정청의 청문 절차는 처분 전 당사자의 의견을 청취하고 사실관계를 확인함으로써 처분의 적정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절차입니다. 그런데 최근 일부 행정기관에서는 청문 중 화해 또는 조정 권고를 제시하며 사전 해결을 유도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권고가 과연 법적 근거를 갖춘 합리적 절차인지, 혹은 사실상 처분의 정당성을 약화시키는 혼선인지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청문 중 화해 권고의 법적 성격과 실효성, 그리고 실무상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중심으로 살펴봅니다.
행정청의 청문 중 화해 권고, 법적 근거는?
현행 행정절차법은 청문 절차를 통해 처분 전 당사자의 의견을 청취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명시적으로 '화해' 또는 '조정'을 권고할 수 있다는 조항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행정청에서는 청문을 진행하면서 당사자에게 사전에 자발적인 이행이나 자진 시정, 일부 양보 등의 화해성 권고를 제시하는 일이 빈번합니다. 이러한 행위는 일견, 갈등을 줄이고 절차를 간소화하며 행정 효율성을 높이려는 노력처럼 보이지만, 법적 시각에서 보면 문제의 소지가 있습니다. 청문은 본래 준사법적 절차로서의 성격을 가지며, 그 목적은 사실 확인과 의견 진술의 기회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청문 과정에서의 화해 권고는 단순한 행정지도 또는 절차적 편의가 아닌, 처분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개입 행위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판례에서도 일부 화해 유도의 적법성에 대해 언급한 바 있으며, 당사자의 동의 없이 진행된 화해 조정이 절차적 위법의 원인이 되었다는 지적도 존재합니다. 또한 당사자가 화해를 거부한 경우, 행정청이 이를 '비협조적 태도'로 해석하거나 불이익한 처분 근거로 삼을 경우 심각한 절차적 하자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청문 중 화해 권고를 제시하는 것은 그 자체로 법적 구속력은 없으며, 오히려 정당한 청문 절차를 형해화할 위험이 존재합니다. 실효성을 가지려면 적법한 절차를 기반으로 당사자의 명확한 동의와 기록을 전제로 운영되어야 합니다.
분쟁조정 기능과 행정청의 역할 혼선
청문에서의 화해 권고는 행정청이 사전 분쟁조정자 역할까지 수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행정청 본연의 역할인 사실확인과 법 적용에서 벗어나, 당사자 간 타협을 유도하는 이중적 기능 수행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물론 행정 부담을 줄이고 조속한 사건 종결을 도모한다는 취지는 이해할 수 있으나, 그 과정에서 권리 보장과 절차적 공정성이 희생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특히 이 같은 화해 권고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이나 법적 근거 없이 담당자의 재량에 따라 임의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실무상 큰 혼란을 낳고 있습니다. 어떤 청문에서는 화해를 강하게 권유하며 서면합의를 유도하는 반면, 또 다른 사례에서는 전혀 그러한 절차 없이 원칙적 진행만 하는 등, 행정청마다 편차가 심한 운영 방식을 보이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당사자가 청문 중 제시된 화해안에 동의했지만, 이후 행정청이 이를 무시하고 본래의 처분을 그대로 강행하는 경우입니다. 이는 당사자의 신뢰를 저버리는 결과이며, 행정의 예측가능성과 신뢰보호 원칙에도 위배됩니다. 행정청의 권고가 단지 ‘권고’에 그치는 것이라면, 그로 인해 당사자가 처분 대응을 포기하거나 권리를 제한당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비공식적, 비정형적 화해 권고 관행은 제도적 기준 없이 작동되기보다, 분쟁조정 역할은 별도의 중립기관 또는 제3의 위원회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청문은 어디까지나 행정처분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절차이며, 조정과 중재의 기능은 법적으로 분리되어야 혼선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실효성 확보를 위한 제도 개선 방향
청문 중 화해 권고 제도를 실효성 있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기준 마련과 당사자 보호 장치 확보가 필수적입니다. 우선 화해 권고가 가능한 사안의 범위와 기준을 행정절차법 또는 지침 형태로 명문화하여, 행정청의 자의적 판단을 방지해야 합니다. 또한 권고안 제시 시에는 반드시 서면 기록을 남기고, 당사자의 자발적 동의가 있었음을 명시해야 하며, 그 합의가 처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사전에 고지해야 합니다. 실무적으로는 화해 권고 전용 절차를 별도로 두어, 청문과 병행하는 것이 아닌 사전 또는 사후 절차로 분리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청문 기일 전에 ‘자율조정 기회 안내문’을 발송하거나, 청문 후 일정 기간 내 합의가 가능하다는 내용을 고지하는 등, 제도적으로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는 방식이 필요합니다. 또한 청문 담당자에 대한 화해권고 교육 및 표준 매뉴얼 제공도 실효성을 높이는 방법입니다. 권고가 강요로 비춰지지 않도록 언행을 조심하고, 당사자의 입장에서 불이익을 느끼지 않도록 언어와 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 국외의 경우, 일본은 행정절차법 내에 공식 조정 절차를 분리해 규정하고 있으며, 독일 또한 법률상 조정제도를 행정청 외부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제도를 참고하여 우리나라도 청문 중 화해 또는 조정이 제도화된다면, 신뢰받는 절차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청문 중 화해 권고는 행정의 유연성과 효율성을 고려한 접근일 수 있지만,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운영될 경우 실효성은커녕 절차의 공정성을 해치는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자의적 권고가 아닌, 법과 원칙에 기반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행정청은 청문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고, 화해 조정은 별도 절차로 정비함으로써 권리 보장과 행정 신뢰 모두를 확보해야 할 것입니다.